영국에서 치명적인 유전성 뇌질환인 헌팅턴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치료 임상 1/2상 시험에서 획기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네덜란드 바이오 기업 유니큐어의 치료제 AMT-130이 질병 진행 속도를 무려 75%나 늦춘 것인데요. 뇌에 독성 단백질이 쌓이는 유사한 기전을 가진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의 문이 열릴지 주목됩니다. 하지만 과거에도 비슷한 치료제가 상용화 직전에 실패한 사례가 있었던 만큼, 과학계는 신중한 낙관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번 성공의 핵심은 치료제를 뇌의 특정 영역에 직접 주입하여 전달 효율을 높인 데 있습니다.

알츠하이머파킨슨

헌팅턴병이란 무엇이며, 왜 치명적인가요?

헌팅턴병은 1872년 의사 조지 헌팅턴이 처음 보고한, 발병하면 피할 수 없는 치명적인 퇴행성 유전 질환입니다. 보통 30대나 40대에 발병하여 15~25년 안에 환자를 신체적, 정신적으로 무능력한 상태로 만듭니다. 이 병의 특징적인 증상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마치 춤을 추듯 마구 떨리는 움직임인데, 그래서 무도병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병의 근본 원인은 기억 저장에 관여하는 헌팅턴 단백질을 합성하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 돌연변이 유전자는 이전보다 더 크고, 서로 잘 뭉치며, 독성을 가진 이상 단백질을 만듭니다. 이 독성 단백질이 뇌에 쌓이면 신경세포가 점차 파괴되고, 결국 뇌실이 커지는 심각한 뇌 손상으로 이어집니다. 아직까지 헌팅턴병을 완치하거나 그 진행을 획기적으로 늦출 수 있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는 것이 환자들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현실이었습니다.


75% 진행 지연: 유니큐어 AMT-130의 고무적인 결과

이런 상황에서 네덜란드 바이오 기업 유니큐어는 큰 희망을 제시했습니다. 영국 UCL 연구진과 함께 진행한 임상 1/2상 시험에서, 유전자 치료제 AMT-130이 고용량을 투여받은 환자군에서 질병 진행 속도를 75% 늦추는 결과를 얻은 것입니다.

사라 타브리치 UCL 헌팅턴병 연구센터장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1년 동안 나타날 병변이 유전자 치료를 받은 환자들에게서는 4년에 걸쳐 발생했다고 합니다. 운동이나 인지 기능 감소 폭을 비교했을 때, 다른 헌팅턴병 환자는 1.52점 감소한 데 비해 치료제 투여 환자는 0.38점 감소하여 75%의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또한, 뇌척수액에서 뇌 손상을 나타내는 단백질 수치가 8.2% 낮게 나타난 것도 치료 효과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로 평가됩니다.


마이크로RNA, 독성 단백질 생산 스위치를 차단하다

AMT-130이 헌팅턴병의 진행을 막은 핵심 기술은 바로 마이크로RNA입니다. 이 치료법은 인체에 무해한 아데노 연관 바이러스(AAV)를 운반체로 사용하여 치료용 DNA를 뇌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일반적으로 DNA는 mRNA(메신저 RNA)로 유전 정보를 옮겨 단백질을 만듭니다. 그런데 AMT-130에 있는 DNA는 독성 단백질 대신 길이가 매우 짧은 마이크로RNA를 합성합니다. 이 마이크로RNA는 마치 자물쇠처럼 질병을 유발하는 독성 단백질의 mRNA에 달라붙어 단백질 합성을 차단하는 역할을 합니다. 돌연변이 유전자 자체를 제거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독성 단백질만 선별적으로 막아 병세 악화를 막는 혁신적인 기전인 셈입니다.


과거 실패 사례를 넘어선 이번 성공의 핵심 비밀

과학계가 이번 결과에 대해 신중하면서도 큰 기대를 하는 이유는, 2017년에 있었던 비슷한 유전자 치료제의 실패 경험 때문입니다. 당시 아이오니스 파마슈티컬스가 개발한 치료제도 임상 3상까지 갔으나, 최종적으로 가짜약보다 효과가 나쁘게 나와 개발이 중단되었습니다.

하버드 의대의 올레 아이작슨 교수는 과거 아이오니스 치료제는 뇌척수액으로 투여되어 치료용 RNA가 희석되거나 파괴되었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와 달리 유니큐어의 AMT-130은 두개골에 작은 구멍을 뚫고 헌팅턴병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 뇌 영역인 미상핵과 피각에 직접 유전자 치료제를 주입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치료제가 원하는 목표 지점에 고농도로 정밀하게 전달되도록 하여 효과를 극대화하는 결정적인 차이로 작용했다는 분석입니다. 기술적 난이도는 높지만, 효능을 높이기 위한 정공법을 택한 것입니다.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치료의 희망으로 확장되다

이번 헌팅턴병 유전자 치료의 성공은 단순히 희소 질환 하나를 넘어, 더 많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파킨슨병과 알츠하이머 치매 역시 헌팅턴병처럼 뇌에 비정상 단백질이 쌓이면서 발생하는 신경 퇴행성 질환입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데이비드 루빈스타인 교수는 "이번 유전자 치료법이 성공한다면, 파킨슨병이나 치매 같은 다른 신경퇴행성 질환에 대한 유사한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핵심은 질환을 유발하는 독성 단백질만 정확히 표적으로 삼도록 유전 물질을 조정하는 것입니다. 마이크로RNA를 이용해 헌팅턴병 단백질 합성 경로를 차단했듯이, 파킨슨병의 '알파-시누클레인'이나 알츠하이머병의 '아밀로이드 베타' 같은 단백질 합성을 차단하도록 설계하면 되는 것입니다.


상용화까지 넘어야 할 마지막 관문: 효능의 지속성과 가격

유니큐어는 내년 초 미국 FDA에 유전자 치료제 허가 신청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매우 고무적인 소식이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신중한 접근을 강조합니다.

영국 애버딘대의 조피아 미에즈브로즈카 교수는 연구가 아직 초기 단계이며, 효과 지속 시간과 장기적인 효능 및 부작용을 확인하기 위한 더 많은 시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유전자 치료제의 특성상 환자마다 맞춤형으로 제작해야 하므로 제조 비용이 매우 높습니다. 유니큐어는 이 치료제의 가격이 200만 달러(약 28억 원) 이상의 다른 유전자 치료제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헌팅턴병 환자들에게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소식이지만, 높은 가격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유니큐어의 성공은 인류가 불치병의 영역에 한 걸음 더 다가섰음을 보여줍니다.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 정밀한 치료 전달 방식을 택한 이 혁신적인 접근법이 퇴행성 뇌질환 치료의 역사를 바꿀 수 있을지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봐야겠습니다.

*의학적인 자문이나 진단이 필요한 경우 전문가에게 문의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