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노화를 흔히 개인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스트레스 관리, 꾸준한 운동, 좋은 음식 섭취를 통해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죠. 하지만 최근 한 연구는 우리의 생각을 뒤집습니다. 바로 개인이 아닌, 거주하는 국가가 노화 속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사회적 불평등, 정치적 불안정, 대기 오염 같은 외부 환경 요인이 우리의 생체 시계를 빠르게 돌릴 수 있다는데요, 이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엑스포즘


노화의 원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엑스포좀'

이 연구는 더블린 트리니티대 국제뇌건강연구소(GBHI)에서 진행했습니다. 전 세계 40개국 약 16만 명을 대상으로 '엑스포좀(Exposome)'이라는 독특한 분석 틀을 활용했죠. 엑스포좀은 '노출(exposure)'과 '염색체(chromosome)'의 합성어로, 한 개인이 평생 동안 노출되는 모든 환경적 요인의 총합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생활 방식이나 식단뿐만 아니라 독소, 스트레스, 심지어 사회적•정치적 환경까지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이 연구는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한 사회와 환경이 노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과학적으로 파헤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조사 대상자들의 실제 나이와 건강 상태, 인지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예측한 나이, 즉 '생물학적 나이'의 차이를 '생체•행동 연령 격차(BBAG)'라는 지표로 계산했습니다. 이 BBAG 격차가 클수록 실제 나이보다 빠르게 늙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지표를 통해 노화가 빠른 나라와 느린 나라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노화 속도, 국가별로 이렇게나 다르다니!

연구 결과는 매우 극명하게 나타났습니다. 덴마크와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젊고 건강한 노화를 주도했습니다. 반면 이집트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노화가 가장 빠른 나라로 꼽혔습니다. 특히 이집트인의 예상 생물학적 나이는 실제 나이보다 평균 4.85세나 더 높았고, 남아프리카인 역시 4세 가량 높게 나타났습니다. 에콰도르와 콜롬비아 같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도 노화가 빠른 편에 속했죠.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한국과 중국, 인도, 이스라엘 등 아시아 4개국은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보다는 노화가 느리지만, 북유럽 국가보다는 빠른 중간 단계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결과는 우리가 속한 사회 환경이 노화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줍니다.


노화를 가속하는 세 가지 핵심 요인

연구진은 노화를 앞당기는 주요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첫 번째는 대기질 악화와 같은 물리적 환경 변화입니다. 우리가 매일 숨 쉬는 공기의 질이 신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이죠. 두 번째는 경제적 또는 성별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조건입니다. 불평등한 사회는 개인에게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이는 곧 신체 노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정치 참여 제약이나 민주주의 약화와 같은 정치적 조건입니다. 정치적 불안정은 사회 전반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이 역시 개인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연구를 이끈 아구스틴 이바네스 교수는 "뇌 건강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환경과 사회적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우리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 역시 젊음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의미입니다.


노화는 개인의 문제인가, 사회의 문제인가?

이번 연구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져줍니다. 과연 노화는 개인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사회의 문제일까요? 연구 결과는 노화가 개인의 선택이나 생물학적 특성뿐만 아니라, 물리적, 사회적, 정치적 환경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우리 사회의 건강한 노화를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을 독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 전반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깨끗한 환경을 조성하며, 안정적인 정치 시스템을 구축하는 노력이 더욱 중요합니다. 노화를 늦추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어쩌면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꾸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의학적인 자문이나 진단이 필요한 경우 전문가에게 문의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