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는 "나이 들면 살 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보기 좋게 살이 쪄야 겨울도 이겨내고, 아플 때도 든든하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속설일까요? 최근 한 연구 결과가 이 오래된 지혜에 과학적인 근거를 더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바로 과체중인 노인이 정상 체중 노인보다 큰 수술 후 사망 위험이 오히려 낮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보통은 '정상 체중=건강'이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박혀 있죠. 하지만 노인의 몸은 젊은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생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이 연구가 말하는 비만 역설의 흥미로운 비밀과 우리 부모님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점들을 함께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비만 역설’이란 대체 뭘까?
'비만 역설(Obesity Paradox)'이라는 용어 자체가 좀 낯설게 들리실 수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 특정 상황이나 특정 질병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는 과체중이나 경도 비만이 오히려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학적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비만이 건강에 해롭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역설은 그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처럼 보이죠.
특히 만성 질환 환자나 이번 연구처럼 노인 환자에게서 이런 현상이 종종 관찰됩니다. 과체중인 몸이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 일종의 '에너지 저장고'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합니다. 우리 몸이 수술이라는 큰 충격을 받고 회복하는 동안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이때 체내에 축적된 지방이 중요한 자원이 되는 것이죠. 마치 든든한 비상식량처럼요.
노인 수술, 체중이 중요한 이유
이번 연구는 65세 이상 노인 환자 414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연구진은 이들을 체질량지수(BMI)에 따라 정상 체중, 과체중, 저체중 그룹으로 나누고, 수술 후 30일과 1년 뒤의 사망률을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BMI 25~29.9에 해당하는 과체중 그룹의 30일 후 사망률은 0.8%에 불과했지만, 정상 BMI 그룹은 18.8%, 저체중 그룹은 15.0%로 훨씬 높게 나타났습니다. 1년 후 사망률 역시 과체중 그룹이 가장 낮았죠.
이 결과는 단순히 '살이 찌면 좋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노인 환자의 몸이 젊은 사람과 다르다는 점입니다. 노화가 진행되면 근육량은 줄어들고, 여러 질환에 대한 저항력도 약해집니다. 이럴 때 적당한 지방과 근육은 신체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완충하고, 회복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모든 과체중이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 연구는 고도비만 환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BMI 30 이상인 고도비만은 여전히 수술 합병증 위험을 높이고, 건강에 해로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번 연구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보인 것은 '적당한' 과체중과 경도 비만 그룹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연구는 ‘선택적 수술’이라는 특정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암 수술처럼 미리 계획하고 진행하는 수술에서 효과를 보인 것이지, 평생 과체중으로 사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부모님의 건강, 이제는 다르게 접근하세요
이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바로 '개개인에게 맞는 맞춤형 건강 관리'의 필요성입니다. 특히 노인 부모님을 돌보고 있다면, 무조건적인 다이어트나 정상 체중 유지를 강조하기보다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고려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혹시 부모님이 수술을 앞두고 있다면, 다음과 같은 점을 함께 생각해 보세요.
전문가와 상의하기: 무조건적인 체중 감량보다는 주치의와 상의하여 수술 전 최적의 신체 상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로는 적당한 체중 유지가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나이 들면 살 좀 있어야 한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은 단순히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였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연구는 그 지혜에 과학의 옷을 입혀준 셈이죠. 부모님의 건강을 생각할 때, 이제는 BMI 숫자 하나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그분들의 삶과 몸의 특성을 함께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의학적인 자문이나 진단이 필요한 경우 전문가에게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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